5.26.2010

재명명덕(在明明德) : 자신 안의 밝음,빛과 덕(德)을 키워 세상에 기여하라

재명명덕(在明明德) : 자신 안의 밝음,
빛과 덕(德)을 키워 세상에 기여하라!

중국의 사상 정신적 흐름에서 커다란 양대 산맥이 있었죠? 곧 공맹의 유가(儒家)와 노장의 도가(道家)입니다. 이 외에 묵가나 법가도 있습니다. 도가(道家)는 우주자연과 생명, 인생철학을 바탕으로 한 양생술이 있고, 명상의 방법으로 보자면 선도수련의 맥이죠. 노자, 장자 이전에 도가적 시조가 있었는데요, 누를 황자의 황제(黃帝)입니다. 이 사람은 뛰어난 영적술수와 술법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우리 민족과는 적수관계에 있었죠. 치우와 싸워 여러 번 패했습니다. 그러나 황제의 스승은 우리 민족의 조상인 동이족(東夷族)입니다. 도가를 다른 말로 황로(黃魯), 황제와 노자의 황로라고도 합니다. 유가는 시조가 공자인데, 공자는 장의사 가문이었죠. 유가는 장의사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묵가는 매우 독특한 사람이었는데, 우리에게 알려진 성인 중에서 묵가를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은 예수에요. 묵가는 중국의 예수입니다. 겸허를 주장햇잖아요? 묵가는 하늘을 경외하는 마음, 겸허함과 사랑으로 소외된 사람들, 빈자(貧者)를 돌보는 것에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들 흐름의 맥들은 본래 원류가 비슷했어요. 비슷해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는데, 유가는 나중에 치세 쪽으로 기울게 되죠. 정치로 진출을 시도했고, 노장은 도 닦는 쪽, 주로 양생술로 갔어요. 묵가(墨家)는 적극적으로 사회참여를 했어요, 제도권이 아니고 주로 비제도권에서. 묵가는 예수의 사상과 많이 비슷합니다.

공자는 제도권으로 진출하고 싶어 했어요. 출신성분과 가정환경으로 인한 콤플렉스가 많았던 사람인데, 도를 닦아가지고 세상을 다스려보고 싶은 마음이 많았습니다. 해서 세상을 주유(周遊)하며 시도를 햇는데, 공자를 받아준 사람이 없었어요. 공자와의 대화에서 장자는 이런 공자에 대해 비웃죠. 노장은 어찌 보면 아웃사이더들, 히피그룹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기득권 사회에 편입되는 것을 거부하고 방대한 우주와 교감하며 살아가고자 했죠. 공자는 사회적으로 출세를 하지 못햇지만 인도의 불교와 힌두교 전통만큼이나 동아시아 전체의 사상․ 정신적 흐름에 큰 영향을 끼쳤죠?
공자의 사상은 제자인 자사와 자몽의 정치적 출세를 통해 세상에 많이 알려졌어요. 공자의 사상을 이어받은 제자는 안회이죠. 공자의 사상을 집대성한 사람은 공자의 손자이구요. 그러나 공자 자신은 수모와 고초를 많이 겪었어요. 심지어는 발을 자르는 형벌까지 받았어요. 공자는 그렇게 살았지만 이 양반이 남긴 것은 사실 대단합니다. 그는 중국의 방대한 인문학적 고전들을 집대성해냈죠. 대학(大學), 논어(論語), 중용(中庸) 등.... 그 중에 하나가 대학(大學)입니다. 잘 읽어보면 그 시대에 어떻게 이렇게 정교하게 진리를 구성해낼 수 있었는지 놀랍습니다. 공자는 마음공부를 했어요. 대학과 논어도 전부 마음공부 얘기입니다. 그 당시에 어떻게 이리도 정교하고 첨예하게 높은 경지의 마음공부 도리들을 밝혀낼 수 있었는지, 지금도 공부가 된 사람들이 읽어보면 놀랄 정도입니다. 인생 공부에 대해 말이죠. 공자의 心法(가르침)은 두 가지입니다. 강의를 통하여 점진적으로 인식을 개조시켜서 올바른 행동에 이르게 하는 것, 이것이 그 하나입니다. 또 하나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을 통한 밀지를 전수하는 방법입니다. 공자의 전체적인 삶을 보면 한 인간으로서 지독히도 운이 없었다고 할 수 있지만 안회를 만난 것은 큰 복이었지요. 안회가 공자의 수제자였어요. 안회는 굉장히 가난핶던 사람으로 스승으로부터 직접 깨달음을 전수받았지만, 서른 세살의 나이로 공자보다 일찍 죽습니다. 이 때 공자가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하면서 몹시 많이 웁니다. 자기 아내가 도망갈 때는 안울었는데 말이죠. 영적으로 아주 심오한 것을 전수받은 사람이 죽어버렸기 때문에 유가의 깨달음의 정수는 전해지지 않고 학문적인 부분만 남아있게 됩니다.

유가의 도법(道法)은 지극함을 다하여서 윤궐집중하는 것, 즉 마음의 중심자리를 잡는 것, 이것이 유가 공부방법의 요체입니다. 이것을 안회에게 전수한 거죠. 여러분도 공부가 많이 되면 나한테서 그것을 전수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이런 심법의 공부방법이 대학(大學)에 많이 나와 있습니다. 유가의 경전(經典)에 해당되는 책이죠. 그러면 대학(大學)의 정의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큰 배움이라고 할 수 있겠죠. 대학(大學)의 처음 부분에서 정의된 대학(大學)은 재명명덕(在明明德)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큰 가르침이란 도(道)를 말합니다. 이미 밝아 있는 덕(德)을 다시 한 번 더 밝힌다는 뜻이죠. 이것이 동양사상의 정수에요. 곧 내재성(內在性)인데, 인간 안에 밝은 덕(德)이 내재해 있다는 거지요. 기독교와의 차이점이 그거에요. 기독교의 가르침을 따르면 인간 안에는 밝은 덕(德)이 없고,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내가 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바깥에 있는 절대자에게 죄사함을 받아야 되요. 예수가 그것을 사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스승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구세주가. 동양에서는 좀 달라져요. 우리 안에 이미 빛이 있다는 거죠. 부처도 같은 말을 했죠? 구유불성(具有佛性), 우리 안에 이미 깨달음의 성품을 갖춰져 있다는 의미죠.
그러면 밝은 덕(德)이 무엇입니가? (청중들 대답 : 사랑..... 공(空).... 빛.... ) 그래요. 빛과 사랑, 빛과 사랑이 밝은 덕(德)이잖아요. 우리가 여기에서는 德자를 사랑으로 표현했는데, 한문에서는 德이 무슨 德자에요? 클덕(德)자이죠? 무엇이 크다는 건가요? 사랑이 크다는 거지요. 동양 사람들이 덕(德)을 ‘크다’라고 표현한 것은 사랑이 덕(德)이 큰 사람(大人, the great being)을 만들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한 거죠. 선인들의 가르침이 인간의 본질에 대한 가르침이기 때문에 영원한 거죠. 어쨌든 큰 사람이 될 수 있는 밝은 덕(德)과 사랑이 우리에게 있는데, 대학(大學)이라는 것은 그것을 드러내게 한다는 겁니다. 다시 비춰주게 한다는 이 말이야.

여러분들이 여기 온 목적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안에 있는 밝고 빛나는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서 온 겁니다. 드러내서 뭐 할려고? 드러내서 온전하게 쓸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지요. 빛과 사랑이라는 것은 여러분을 크게 해주는 거고 큰 사람이 되게 해주는 거에요. ‘덕(德)을 행한다’함은 내가 크게 된다는 것, 내 것을 더 키워내는 과정이 되겠지요. 우리가 덕(德)을 베푼다고 그러잖아요. 덕(德)을 베푼다는 것은 어떤 뜻이죠? 내가 내 안의 빛과 사랑을 쓰는 것이고, 내가 빛과 사랑으로 움직인다는 겁니다. 빛과 사랑은 어떤 역할을 합니까? 남을 기쁘게 해줄수 있지요? 해피타오는 기쁨의 도(道)라는 뜻인데, 기쁨의 도라는 것은 내 안의 밝음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쓰면서 자기를 키워가는 길입니다. 다른 사람이 기뻐할 수 있는 일을 하라는 거에요. 친절을 베풀고, 도움을 주고.... 나 혼자만 좋으려고 하고, 나 혼자 잘 살려고 하는 것은 욕심이지 덕(德)은 아니죠? 사람이 욕심이 많을 때는 자꾸 불편해져요.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면 같이 기뻐져요.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한다는 것은 내 안에 복(福)통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즉 복의 파장, 행복의 파장을 만드는 거에요. 행복은 행복을 끌어옵니다. 장사 잘하는 법이 뭐겠어요? 내가 밝고 기쁜 마음으로 계속 친절하게 나가는 거겠죠? 그러면 사람들이 오고 싶어지잖아요. 내가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고 정성을 쏟아주고,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밝은 마음으로 이렇게 하면, 누구든지 마음이 끌려 자꾸 오고 싶어지겠죠? 내가 원하는 것도 아니지만 내 안의 행복의 파장이 자꾸 커지는 거에요. 내 복의 웅덩이가 자꾸 커지는 거에요. 즉 내 안의 영역이 커지는 거에요. 이렇게 내 웅덩이에 우주가 채워주려고 들어오겠죠. 복이 들어온다구요. 이게 우주의 법칙이라는 거죠. 내가, 내 그릇이 자꾸 커지는 거겠죠? 도(道)라는 것은 우주의 법칙이잖아요. 우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내 안에서 우주의 법칙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되요. 그것을 해내가는 과정이 해피타오, 도(道)라고 할 수 있겠죠? 그것은 다른 사람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삼고, 나의 기쁨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양하는 것이겠죠. 그게 가장 최고의 장사입니다. 장사의 가장 큰 기쁨이 이것 아니겠어요? 옛날에는 이것을 몰랐어요. 그러나 해피타오가 나온 지 13년 만에 그것이 장사의 기본이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어요. 왜냐하면 요즘은 사람들이 밝아져가지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 도망 가버려요. 행복함을 느끼도록 해줘야 해요.


여러분 안에는 빛과 사랑, 그것이 사실은 무한대로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한대로 있는 그 힘을 자신 안의 어떤 부분이 막아버리기 때문에 그것을 몰라요. 지극히 한정된 부분만을 쓰다가 가게 되요. 이것을 되풀이하면서 제약과 한계를 없애버리고, 무한대의 온전한 힘을 알고 쓸 수 있을 때까지 자꾸 오게 됩니다. (= 윤회) 내 안에 있는 밝음을 펼쳐서 많이 쓰게되면 점점 나의 우호세력이 증가할 것 아녜요? 내가 덕(德)을 많이 베풀고 복을 많이 쌓았잖아. 그게 어디 안가고 이 지구의 장에 남아있어요. 일종의 적립이죠. 적립된 그것이 나하고 연결돼 있어요. 그것이 나에게 돌아올 때 곧 운, 행운이 되는거죠. 내가 복을 많이 지은만큼 행운이 오는 것, 이것이 우주의 법칙입니다. 그러니까 행운을 불러오기 하기 위해서는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베풀어야 하는 거죠. 그럴 때 천사들이 와서 돕게 됩니다. 내가 천사를 부리게 되는거죠.

내 안에 있는 밝은 빛과 그것과 사이는 몇 cm차이일까요? 100mm이야. 생각의 차이만큼의 차이야. 두려움이란 무엇일까요? 빛과 사랑의 결여입니다. 내 생명체가 자기를 보존하려는 보호본능에서 만들어내는 하나의 생체적 메카니즘입니다. 그런데 이게 심리에 엉겨 붙어서 하나의 세력(entity)이 되면서 실체 없는 두려움이 실체가 있는 것처럼 인식되는 겁니다. 두려움이라는 것은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막연히 자기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어떤 상념에너지이죠. 빛의 결여로 상상이 만들어낸 상념체가 하나의 실체(entity)가 됐어요. 거기에 내가 계속 주의를 주면서 나중에는 스스로 숨도 쉬지 못하게 되죠. 우리는 누구나 이런 두려움을 갖고 있죠?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두려움에 가장 좋은 약은 행동, 용기입니다. 행함의 용기, 어려움에 불구하고 쪽팔림을 무릅쓰고 해보는 용기. 이 두려움은 심리학적인 거에요. 두려움이라는 관념은 나는 안전하다고 여기는 나만의 공간, 그 지대의 한계 그것이 두려움이야. 내가 이 안에 있을 때는 안전하다고 여기겠지요. 그러나 이 밖에 있으면 두렵기 때문에 어두워지겠죠? 자기가 설정한 마음의 한계 때문에 두려워하게 되는 거지요.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이 한계 밖으로 나가는 길 밖에 없어요. 터뜨려 보는 겁니다. 인류사의 위대했던 사람들은 다 이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두려움과 나약함과 싸워서 한계를 뚫고 나왔던 사람들이에요. 이런 사람들은 계속 진화하고 있는 것이죠. 내가 커지려면 자신이 설정한, 편안하게 여기는 그 셰계, 안전하다고 여기는 그 세계를 벗어 던지는 용기가 필요해요. 이것이 성장하는 길이에요. 여러분들은 몸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성장해야 합니다. 물질적인 성공 또한 두려움을 무릅쓰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행복감에는 결국 두 가지가 있죠? 내가 성공해냈다는 결과치에 대한 만족감, 뿌듯함, 이런 행복감, 또 하나는 행함 자체에서 오는 행복감. 우리는 행함의 행복감, 그 기쁨을 가져야 해요. 시간이라는 것은 그래서 중요한 겁니다. 시간 자체보다는 행함의 기쁨, 시간 속에서 행하는 행복감이 있잖아요. 시간 속에서 행하잖아요. 그러나 우리가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시간이 없을 것처럼 여겨지는 그 때에도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것이 필요한 겁니다. 표면적으로, 내 한계 안에서는 안보이잖아요. 그 때에는 한 그루의 나무가 있다고 믿어줘야 되요. 길이 안보일 때도 길이 없다고 믿어줘야 된다 말에요. 있다고 믿어주는 상상력이 필요한 거죠. 성장하기 위해서는 모험심이 필요하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믿음과 상상력이 필요한데, 이 두 가지가 통일돼 줘야 합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한 우리의 공식- 잘 베풀어라. 내 안에 복의 창고를 만들어라. 또 하나는 나의 편안함을 추구하지 마라. 불편함을 자초하고 나가라. 쪽팔림과 두려움을 자초하고 나가라. 행동하는 인간, 근성 - 내가 끝까지 한 번 해보겠다는 근성. 그렇게 행함으로서는 우리에게서 힘이 나옵니다. 내 안의 빛과 밝음과 사랑이 힘으로 나오는데, 그 힘이 자신감이죠. 그 때 스스로 자신을 인정해줄 수 있게 되요. 자신감이 뭐에요? 자기가 자신을 믿고 인정해주는 거잖아요. 그 자신감은 자기가 만든 것이 아니고, 우주의 공식에 의해 자기 안의 밝음이 밝게 나와주는 것입니다. 내가 이루어 냈을 때만이 내 안에 씨앗으로 있었던 밝은 힘이 자신감으로 나와줘요. 물질적인 세계에서는 이것을 필요로 해요. 사회적으로 실적(공적)을 내줘야, 이뤄내야 해요. 자신이 안 해본 일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불편함을 느끼고 벽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나 이것을 감수하면서 행함으로 뭔가를 이뤄내야 됩니다. 그러면 기회가 생기게 되죠. 그 때는 자신이 불편하게 느꼈던 그 벽들, 한계들이 상승하기 위한, 기회를 만들기 위한 디딤돌들로 여겨지겠죠? 우주는 여러분들이 행하지 않을 때 주지 않아요. (중략)

세속적인 것과 영적인 성공의 원리는 다르지 않아요. 세속적인 일이나 영적인 일이나 그것을 이룸에 있어서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가 아주 중요합니다. 세속적인 것을 이뤄낼 때 쓰는 마음이 영적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분적으로 성공해도 불행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목표를 세우고 이루어 내는 데서 자신의 영적인 자질과 빛과 힘을 발견해 가야 합니다. 사실 뭔가를 이룩하기 위한 과정에서 부딪히는 모든 상황은 영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집중하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중략)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러분들은 자신들이 팔아먹을 어떤 것이 있어야 해요. 팔아먹을 것이 있어야 된다는 말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여러분들이 내놓을 것이 있어야 된다는 얘기에요. 그것이 여러분의 가치가 되겠죠. 여러분 안의 밝은 힘과 빛을 써서 가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안의 밝은 힘과 빛은 그 자체로도 가치가 있지만, 그게 교환가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에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쓰여지면서, 또 그것을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한테 인정 못 받으면 가치가 없어져요. 교환가치는 없단 말이에요. 그 교환가치란 다른 사람이 여러분의 어떤 것을 쓰고자 하는 어떤 부분이에요. 다르게 표현하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 게 그 가치라고 할 수 있어요. 그게 객관적 가치에요. 주관적 가치는 내가 좋은 것이고,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게 객관적 가치가 되는 겁니다. 객관적 가치는 인정(認定)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른이 돼간다는 것은 이런 사실을 알고, 나를 그런 존재로 만들고 나서 가치를 제공하는 인간이 되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돈을 안받아도 되요. 돈을 안받아도 뭔가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고 풍요로움을 줄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소중한 존재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그 게임을 하러 여러분들은 지구에 온 겁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빛과 덕을 써서 가치를 경영해야 하는 겁니다.
자본주의 이전 시대는 두려움을 이용한 지배, 권위를 이용한 협박이 주요한 정치문화였지만, 이제는 그게 아니죠? 이제 여러분들은 자기선택에 의해 삽니다. 그리고 얼마나 좋은 것이 많습니까? 여러분들이 가치있는 것을 제공해주기 위해서 알아야 할 것은 첫 번째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여러분의 장점을 알야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누구든지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그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죠? 그것을 알기 위해서 스승과 멘토가 필요합니다. 멘토는 여러분의 가치를, 성장의 씨앗을 발견해서 그것을 키울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사람,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기여하는데서 여러분들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그러할 수는 없죠? 여러분의 장점을 가지고 그러해야 된단 말입니다. 자신의 장점을 살려서 상대방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을 때, 편안함을 줄 수 있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그게 장사에요. 이게 영적인 차원과 무관할 수는 없죠? 그래서 상인의 도(商道)라는 말을 씁니다. (중략) .....

내가 보다 현실적이 된 것 같습니다. 내가 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에게도 현실을 돌파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하는 것이 내 바램입니다..... 움직여 보는 것이 이익입니다. 움직여 보면 힘이 납니다. 움직여 보지 않고는 자신을 모릅니다. 실천을 통해서 자신을 알아가게 되고, 실제로 뭔가를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이루어 낸 것이 있어야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뭔가를 줄 수 있겠지요? 줄 수 있을 때까지 여러분들은 배우는 자이고, 줄 수 있을 때 여러분들은 어른이 되는 겁니다. 그래야 떳떳해집니다...... 그릇을 만들어 가십시요. 여러분들이 스스로 그릇을 만들기 힘들다면 사회 각 분야의 멘토를 찾아야 합니다. 스승이 많아야 해요.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삶에 스승이든 뭐든 동참시킬 줄 알아야 해요. ... 명상은 성찰을 위해서 필요한 거고 그 다음에는 뜸들이지 말고 움직여야 합니다. 뜸은 필요하지요. 정성을 들이는 차원에서 필요한데, 행동성을 품고 있는 뜸(정성)이여야죠. 지금까지 명상이란 것이 방만하고 추상적이었어요. 뜬구름 잡는 얘기가 많았는데, 그것을 좀 더 현실 지향적으로 바꾸고 싶어요. 내 가르침 중에 핵심적인 것이 있습니다. ‘쪽팔림을 무릅쓰고’..입니다. 내가 커지려면 쪽팔림을 무릅써야 합니다. 쪽팔림과 두려움을 꺾고 나갈 수 있어야 되요. 여러분이 성장하려면 그래야 된다는 얘기에요. 내가 뭔가 하려고 할 때마다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올라와요. 쪽팔림 그 자체는 괜찮은데 쪽팔림에 주저앉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쪽팔림이란 자동 메커니즘을 알고 그것을 뚫고 나오란 말에요. 쪽팔림이 일어날 때 그것을 피할려 하거나 행위를 중단하려 하지 말고 쪽팔림을 수용을 해보세요. “ 아, 일어났구나.” 그러고 나서 그것을 뚫고 나와요. 그러고 나서 행하잖아요, 쪽팔림을 무릅쓰고 행해보잖아요? 몰입해서 행하다 보면 그것을 통과하게 돼 있어요. 그 때 내가 그것을 넘어가게 되고 신이 나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

결론적으로 여러분들은 행동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밝은 빛을 정성으로 현실에서 이루어 내고, 그 이루어냄이 여러분들이 좀더 멀리 나아가도록 하는 삶을 살도록 하자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가치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가치란 하나는 여러분들의 존재적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돌멩이 하나에도 하늘의 뜻과 기운이 서려 있다는 말도 있듯이 그 어떤 것이든 가치있는 것으로 만들어 낼 줄 아는 눈, 그 가치있는 것을 오게 하는 힘이 그 하나입니다. ...(후략)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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