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은 빛을 만들 수 없다.
명상은 다만 사고를 잠재우고
자신 속에 이 심원한 고요에 귀기울이는 거룩한 의식이다.
명상은 사고를 비워내는 작업이다.
자아는 명상을 할 수 없다.
자아는 다만 사고가 부질없고 보잘 것 없으며 복사품이라는 것을 알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사고의 끝이다.
그러면 사고가 아닌 심원한 고요가 들어설 자리가 있게 되는데 진리의 빛은 바로 이 침묵의 공간 속에서 현시된다.
당신이 명상 중에 생각으로 그려내는 모든 빛은 진리의 빛이 아니다.
빛을 그려낼 필요가 없다.
빛은 원래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사고를 비우기만 하면 된다.
당신이 만들어낸 빛에 생명이 없다.
그러므로 다만 사고를 멎고 심원한 침묵 속에서 고요의 강물이 흐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만 하라.
명상은 고요라는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마음이라는 악기를 조율하는 일이다.
삶은 끝없는 만남의 과정이다.
무엇보다도 이미 존재하는 태초의 빛과 만나도록 하라.
그러면 당신의 모든 삶에 드높은 질서가 부여될 것이다.
질서는 저절로 찾아올 것이다.
빛은 모든 혼란과 미혹을 소멸시키고 기존의 앎에 새로운 지혜와 의미를 부여하는 지고의 리듬이기 때문이다.
빛으로 해서 지식은 생명을 가지게 된다.
빛의 리듬을 타고 있을 때 지식은 소중한 악보가 된다.
빛을 만나기 전에는 스스로 자신의 혼란된 사고에 질서를 잡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고가 제멋대로 당신을 끌고 다녀 당신은 죄를 저지르고 쾌락의 노예가 될 것이다.
마음을 닦는 것은 사고에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삶에 있어서 질서는 의식과 무의식이 만나게 하는 일이다.
우선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라.
그러나 또한 해야 하는 일을 사랑하고 원하라.
당신이 원하는 일만 하면 당신은 즐겁겠지만 사람들과 나누지도 만나지도 못할 것이다.
당신은 자기 속에서만 갖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해야 할 일도 사랑하라.
사랑할 수 없다면 사랑하기를 배우라.
인간은 선천적으로 배울 수 있는 능력을 타고 났다.
그 때 당신은 사람들과 사귀고 나눌 수 있을 것이다.
- 한바다 선생님의 '영감의 서' 중에서 -
5.31.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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