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2010

<삶과 명상>이 만난 사람들 -한 바다편 (2)

한바다의 영적 여정과 의식의 세계 그리고…










윤: 당신은 지금까지《마하무드라의 노래》와 《3천년의 약속》, 두 권의 책을 냈다. 《마하무드라의 노래》를 낼 때까지의 시기, 그로부터 《3천 년의 약속》을 낼 때까지와 그 이후의 시기 등 대략 세 단계로 당신의 영적 여정을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각 시기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한: 《마하무드라의 노래》는 대중 강연은 아니다. 그 책은 많은 부분 무의식, 아뢰야식의 차원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책을 내기 이전에 나는 선이든 기독교든, 여러 가지 많은 체험을 하였다. 다른 사람들의 오라를 본다든지 텔레파시나 힐링 능력 등등 많은 초능력도 생겼다.



그러나 영적인 혼란이 나에게 닥쳐 왔다.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 흐름을 다시 한 번 꺾어 마음을 정화할 필요성을 느꼈다. 모든 것을 정리하려고 하던 때였다. 그래서 그 책에는 전문적인 이야기들이 주종을 이룬다. 마음 공부에 있어서의 네 단계의 변화와 맥을 잡기가 그 책의 핵심이다. 1986년부터 1990년까지인가가 말하자면 마음의 수술과 관련한 공부에 관한 것이라면 《3천년의 약속》은 미래의 비전을 말한 것이다.



영적인 것에서 거기로 넘어가는 데는 몸이나 한의학, 선도에 대한 공부가 있었다.



나는 그 전에는 줄곧 영적인 것을 추구해 왔는데 내가 그것들, 몸에 대해서는 매우 부족하며 더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몸에 관한 공부가 영적인 차원보다 더 어려웠다.



《마하무드라의 노래》 이후 《3천년의 약속》이 나오기까지 나는 ‘해피타오(한바다 선생이 만든 영성계발 공동체)’를 시작하고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마음공부만이 아니라 삶과 명상과의 조화를 꾀해 보자 한 것이다. 요즘은 인터넷이니 성이니 많은 것들이 표면화되고 시대가 바뀌었다. 육체 공부, 한의학, 침술 공부를 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것이 나로선 마음 공부의 끝인지도 모르겠지만 평화와 행복, 이 세상을 반대하지 않고 포용하고 성도 긍정하고, 그런 것과 관계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마니푸라 센터와 그 아래가 열리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나는 그 이전의 시기에는 확실히 영적으로 편중되어 있었던 것이다.









윤: 어떤 계기가 있었나?









한: 어느날 인사동에서 제자와 얘기를 나누다가 여관에 들어갔다. 그런데 옆방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거슬리고 짜증이 났다.









윤: 아, 퍽킹 사운드. 나는 아주 좋던데?









한: 왜 거슬리나? 나 자신에게 반문했다. 거슬릴 이유가 없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즐기자. 백 프로 받아들이자. 그 순간 나는 엄청나게 행복했다.









윤: 그때가 언제였는가?









한: 아마 1994에서 1995년쯤의 일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한 꺼풀 벗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엄청나게 행복했다. 그리고 밑바닥 깊은 곳이 풀렸다.









윤: 당신은 《마하무드라의 노래》를 썼을 때 이미 모든 센터가 열렸다고 했는데 지금 그 말은 모순되지 않는가?









한: 사하스라라 센터가 열리고 모든 센터가 다 열려도 세상에 존재하면서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게 된다. 사람들이 가진 파장과 탁한 에너지에 대해 민감해지고 그것들이 심장과 마니푸라에 충격을 준다. 그것들이 다 풀어졌다는 것이다. 그때의 경험은 대평화, 대열반, 완전한 풍요, 엄청난 지복, 모든 것에 대한 긍정이었다. 예를 들면 나는 평생 돈을 번 적이 없다. 돈을 벌 기회는 많았지만 나는 돈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런데 왜 돈에 대해 반대하고 그것을 막은 건가? 나는 일체에 대해 긍정적이 되었다.









윤: 말하자면 영혼의 진리를 추구하느라 물질적인 것에 대해 부정적이었다는 뜻인데 일반인들이 보기엔 단순히 부정적인 상태에서 긍정적인 상태로의 전환(대각과는 다른), 일반적인 심리현상의 일종일 수도 있다. 어린시절은 어땠나?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는 없었나?









한: 그런 의미에서라면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나는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가 전혀 없었다.









윤: 그게 가능할 수 있는가?









한: 나는 고뇌를 끊기 위해 영적인 길에 들어선 것이 아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신이나 진리에 대한 그리움과 열망 속에서 살았다. 나의 첫 번째 이상형은 요가난다 같은 사람이었다.



나는 영적인 측면에서 복 받은 사람이다. 내가 살던 마을은 비록 이십 가구가 될까 말까 한 작은 동네였지만 영능자들이 많았다.









윤: 영능자?









한: 그렇다. 우리 엄마도 그런 성향이 매우 강한 분이었지만 세속적인 생활에서 추방당한 샤먼들이 마을에 꽤 있었다. 그들의 집단 거주지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나의 아버지는 인자하고 너그러우며 대단한 호인이었다. 내가 받은 상처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라 이 삶 속에서 받은 상처였다.









윤: 어떤 상처 말인가?









한: 나는 화려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학교에선 줄곧 일등에다 전교 회장을 맡았다. 그런데 어느날 아버지가 동네 사람으로부터 몇 푼 안 되는 빚을 지자 우리집은 매일매일 빚쟁이한테 시달리게 되었다. 아버지는 내 앞에서 뺨까지 얻어맞았는데 그런 모습은 자존심 강한 나에게는 죽기보다 싫은 장면이었다. 엄청난 모멸감에 흙구덩이에 얼굴을 파묻은 적도 있었다. 정말 죽고 싶었다. 어린 마음에 돈은 웬수구나, 돈에 대한 거부반응이 생겼다.



그것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받은 상처들이었다.



‘마하무드라’의 시기에서 ‘3천년의 약속’까지의 기간으로 돌아가면, 그 전의 나의 영적인 케어와 밝음은 이 세상에 완전히 소속된 밝음이 아니었는데 지구에 안착됐다는 느낌으로 종결되었다는 것이다. 엄청난 행복의 느낌이 찾아왔다. 과거에는 영성적이고 신을 향해 걸어갔지만 밑바닥에선 어떤 부분이 막혀 있었는데 그것이 풀린 것이다.









윤: 요가난다를 읽은 것은 언제였는가?









한: 1982년도의 일인 것 같다. 국내에 번역되기 전에 대학 동아리에서 요가난다 원서 강독 모임이 있었다.









윤: 그럼 청년기의 일인데 군부독재 시절에 그런 책을 읽는 스터디 그룹을 결성하기는 흔한 경우가 아닌데?





한: 맞는 말이다. 나는 경북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다 서울대 불문과에 편입했다. 생택쥐베리가 좋아서였는데 그에 관한 강의는 한 번도 못 들었다.



나도 반독재 투쟁에 참가했었다. 그때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의식화 클럽에도 참가하고 그 계통의 책도 읽고 데모도 했다. 그런데 어느날 나는 그들이 술을 마시고 버스 차장에게 행패를 부리고, 단체로 창녀촌에 가는 걸 보고는 모두 다 가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당시 모든 운동권 책을 불태워 버렸다.



그 무렵엔 집안도 잘 살았지만 서울의 삶 자체에 회의를 느꼈다. 소박한 삶이 그리워져서 경북대로 다시 들어가려 했지만 이미 제적된 상태인데다 복학 수속도 까다롭고 아무튼 삶이 무지 피곤했다.



방랑과 삶에 지쳐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왜 사는지 알 수 없었다. 나라는 온통 데모를 하지만 전두환이는 보고 살아야지 나라는 개꼴이지.그런데 마침 집안에서 속 썩이는 일도 생겼다. 나는 그 당시도 친구들 사이에서는 우상적인 존재였는데 나를 따르던 친구들한테는 욕을 먹고, 그러다 보니 믿을 놈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대 캠퍼스 좋은 데 있지 않은가? 한데 나는 그런 데가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었다.



거기 얼핏 보면 시커먼 게 정신병동 같다. 매일 집에서 그런 강의실이나 왔다 갔다 하고.



의도적인 전환을 해보기로 했다. 삶을 긍정해 보자, 있는 그대로, 그렇게 말이다. 해서 모든 서클에 들어가 보았는데 그러다가 명상회를 만들었다.









윤: ‘마하무드라’에서 ‘3천년의 약속’에 이르는 시기에 있었던 변화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한: 그것은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 속에 있다가 세속을 긍정하는 과정이었다. 그 무렵 나는 한 스승을 만났다. 그는 도가, 탄트릭 계열의 스승이었는데 밀라레파 같은 사람이었다. 그가 나의 마음을 파괴하였다.



나는 그 무렵 단식과 소식으로 몸이 망가져 있었다. 관법으로 해결하려 했지만 되지 않았다. 원기가 손상되고 육체가 이탈되고 심장이 타는 것 같고. 말을 하면 심장이 울렁거리고 전신이 고통스러웠다. 단식을 하고 보식을 하는데 개고기에 소주에 김치를 먹었으니 오죽했겠는가?









윤: 개고기에 소주라? 마음공부를 강조했는데 지금 그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한: 마음공부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나도 알았다. 마음공부는 더 이상 안나빠지게는 하지만 좋아지게는 할 수 없었다. 육체는 육체의 원리가 있다.



그 당시 내가 만난 분은 한의학의 대가이자 도가의 기인이었다. 그 할아버지는 내게 약을 주었지만 나는 그를 의심하여 먹지 않았다. 마니푸라 센터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때에도 내게는 나를 따르던 제자가 있었는데 그도 그 약을 받아 꼼꼼히 복용했다.



그러다가 어느날 오쇼명상센터를 방문했는데 그때 맹장, 췌장 부분이 뒤틀려 오고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그래서 그 제자에게 약을 달래 먹었는데 들어가는 순간 너무나 신묘한 작용이 일어났다. 이런 게 있구나 싶었다. 그렇게 해서 의학이란 다른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윤: 무의식적으로는 그 할아버지를 믿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한: 그렇다. 영의 인도, 무의식의 인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나는 할아버지를 찾아가 절을 했는데 그 순간 그에게서 강한 약의 기운이 흘러나와 거짓말처럼 내 전신에 퍼지기 시작했다.









윤: 당신은 무척 민감한 상태였을 것이므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편의 영적인 드라마 같다.









한: 그렇다. 나를 백 프로 믿게 하려고 그런 일(할아버지에 대한 의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마음을 열었다.









윤: 그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연장선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나?









한: 맞다. 스승은 아버지의 연장이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은 스승과의 관계 역시 좋지 않다. 내가 스승에게로 가는 것이 아니다. 스승이 나에게로 오는 것이다.









윤: 할아버지가 준 약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한: 그 할아버지 자체가 약이었다. 할아버지 자체가 약의 필드였다. 내 몸은 회복되고 나는 약이 아닌 엄청난 금강석을 얻었다. 그 할아버지 준 것은 실은 청간제였다.



나는 화 체질이라 간이 안 좋다. 피가 아래로 처졌다는 것이다. 단식으로 민감해져 있는데 탁한 음식을 먹고 원기가 소멸되는 상태인데다 술까지 엄청 마셨으니 부작용이 심각했던 것이다.









윤: 결국 여기까지는 부성애로 인해 치유된 것이라고 할 수 있나?









한: 그렇다. 몸이 좋아지고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다. 개인적인 마음공부는 끝났다. 그리고 그간의 공부를 세상에 가르치기로 하였다. 그때가 분수령이다. 그 할아버지는 오로지 나만을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는 고대의 기성의 화신이라 했는데 당시 84세였고 자기 의학은 일반 한의학과 다른 차원의 것으로서 고조선시대부터 이어져 나온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그로부터 약과 의학의 세계, 도가 지식을 전수받았다. 누군가 몸이 나쁘다 하면 전에는 내가 해결할 수 없었는데 그 이후에는 그런 것에도 처방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윤: 말하자면 독각승에서 약사여래로 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나?









한: 그렇다. 스승은 제자를 만나면 회춘을 한다. 아버지는 스승이고 그 관계가 화기애애해진 것이다.









윤: 고대 기성의 화신이니 고조선 시대니 이런 것은 한국인의 아뢰야식처럼 들린다. 한국적인 의식세계의 상징 언어 말이다.









한: 그렇다. 그러나 그것들은 객관적일 수도 있다. 언어 자체는 대립되어 있어 힌두어가 다르고 어디 언어가 다르고 또 심신어가 다르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영적으로 포용해야 한다.



대도인이 되려면 혼을 바꿔야 한다. 그렇게 하여 대도인이 된다 하더라도 그런 부분, 한국적 패러다임의 부분을 가지고 있으나 아뢰야식은 맑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윤: 혼을 바꾼다? 치료하는 사람은 그 자체가 약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가?









한: 그렇다.









윤: 27세 때 대각을 한 걸로 되어 있는데.









한: 반야심경을 외우다가 그 자리에서 대각을 했다.



영적인 각성과 관련해 내게는 두 개의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한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완전히 열려서 영혼의 힘을 인지하고 춤을 출 정도였다. 다른 하나는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그것은 또 완전히 다른 각성이었다. 제자의 문제는 결국 아버지 엄마와의 문제이다.









윤: 결국 영적인 중심의 고도화나 귀착지는 어머니쪽에 있는 것 같다. ‘모든 영의 어머니는 그녀다.’라는 카발라 계통의 금언도 있지만, 어떻게 생각하나?









한: 맞는 말이다. 아버지의 문제는 마니푸라 센터와 관련되어 있다. 계속 에너지가 올라와도 이 세상에 안착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윤: 그런데 지금까지 선생 얘기의 9할은 아버지와 관계된 것들이다. 부 중심이 아닌가?









한: 아버지의 죽음 이후 나는 엄청난 변화를 겪으면서 그런 연후에 폭발하였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2주 전이다.









윤: 아버지는 영적 대각에 과정적으로 힘을 주었고 성장에 도움을 주었지만 어머니는 다른 무엇을 또 주었다는 뜻인가?









한: 그렇다. 어머니는 우리가 돌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세계이고 무제한의 세계이다.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나는 어머니의 신봉자가 되었다.









윤: 부모와의 문제는 이성과의 문제로도 연결되는 것 같다. 많은 커플들이 문제를 안은 채 살아가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그러다가 헤어지기도 하고.









한: 보수적 가족 관계는 해체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나쁜 일은 아니다. 과거의 가족 관계 안에서는 서로가 진정으로 사랑을 받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윤: 이질적인 사람들 특히 명상인과 비명상인이 같이 사는 경우 많은 고통과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를 보아 왔다. 여기에 대한 해법은 없는가?









한: 남녀관계는 생활이다. 마음의 출발점을 보는 것이 심법이다. 그 안에서 자기 마음을 보아야 한다.(현실 속에서의 명상 수행을 강조하는 말인 듯.)





윤: 그런 문제 외에 모든 남녀 관계란 유치한 관계를 동반하고 있기도 하다.









한: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럴 때는 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그저 적응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윤: 서로의 가치관이 달라도 잘 사는 사람들도 있다. 나로선 남녀관계 안에는 흔히 말하는 가치관의 차이 이전에 서로가 가진 에너지 레벨의 차이가 문제의 본질에 가로놓여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생각하나?









한: 그렇다. 그렇게 되면 피부적으로 그 사람이 싫은 것이다. 에너지 레벨에서 화학적 융합이 안 되고 섹스든 뭐든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들은 인격의 힘으로 버티게 된다.



전체적인 바탕은 예컨대 나이 차나 가치관의 문제 같은 것이 아니다. 한 쪽은 산소밀도(활력이나 영적 맑음과 같은 것인 듯)가 높은 반면 다른 쪽은 탁한 경우 한 쪽은 생생함을 유지하지만 다른 쪽은 그 사람이 비록 상대방보다 더 육체적으로는 젊다고 해도 노쇠해지고 만다. 이때 인격의 힘으로 적응하고 억압하게 된다. 그렇게 버텨 보지만 그래도 간극을 메울 수 없는 경우에 파경이 온다.









윤: 일반인들은 그러면서도 그럭저럭 살아간다. 내 주변의 명상인들은 일반인보다도 더 남녀관계가 화목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오히려 명상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고 거부하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도 사실인데?









한: 물론 그런 문제는 수행자들이 더 많이 부딪친다. 일반인들은 맨날 술 먹고 사람 만나고 그렇게 마취 상태에서 살다 보니 문제 자체가 흐려지고 가려지고 파묻혀지지만 명상인들은 솔직하고 사회적 은폐막이 없기 때문에 빨리 헤어지는 것이다.









윤: 그런데 (명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일리도 있는 것이) 다른 면에서 보면 많은 이들이 명상을 한다고 하지만 그들의 인격이 실제로 닦여지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한: 그렇다. 흔히 말하는 인격이란 대체로 껍데기이다. 명상은 마음이 고요해지는 것이고 이것이 인격의 기초이다. 그렇게 해서 삶의 동기와 행동이 바뀌어야 한다. 내면이 탁한데 인격이 그럴듯하면 뭐하나? 명상에 탐닉하고, 도피적인 명상을 통해서는 인격의 변화가 오지 않는다. 뿐더러 잘 마감질된 인격이란 것도 성이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성이 치유되지 않는 한 인격이 변화하기는 어렵다.









윤: 그 문제에 대해서 조금 더 얘기해 달라.









한: 에너지 센터가 다 열리면 모든 센터에 유포되고 에너지가 막힘없이 흐르게 된다.(그럴 때 진정한 인격의 변화가 온다는 뜻인 듯) 그 이전에 섹스를 방편적으로 억압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일방에 집착하지 말고) 해 보기도 해도 안 해 보기도 해야 한다.









윤: 곤란할지도 모를 질문을 하겠다. 《3천년의 약속》에 관한 것이다. 그 책의 원고는 몇 군데 출판사를 돌았기 때문에 나도 책이 나오기 전에 대략 내용 일부는 알고 있었다. 출판사에 있는 내 후배가 그 원고에 대해서 물었을 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사람이 깨달았는지 아닌지는 내가 알 수 없다. 하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과연 대각을 이룬 사람이 시중 점쟁이나 하는 예언을 하는가? 거기에 내가 모르는 무슨 깊은 뜻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너무 포퓰리즘적 아부가 아닌가? 영적인 문제가 그렇게 대중적 가치와 포장된 상품 수준으로 그러니까 높은 가치가 낮은 가치로 환원되고 유포되는 것에 대해서는 나는 회의적이다, 그렇게 말했었다. 또 그 책에서 말한 월드컵 8강 진출과 관련한 예상마저도 일부 빗나갔지 않은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한: 예언 자체는 맞다 안 맞다가 중요한 건 아니다. 70프로가 맞든 60프로가 맞든 하나의 진전이다.









윤: 그럼 선생이 대각했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 월드컵을 예언하고 한 데는 필연적인 사유가 있었나?









한: 필연과 우연의 상황이다. 나는 그것을 쓰지 않았고 내 제자가 녹취하여 쓴 것이다. 나는 그가 그것을 책으로 만들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윤: 그 책의 원고가 일종의 트렌스 상태에서 녹취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채널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한: 아무 생각없다. 일반적으로 채널링이니 영이니 이런 것들은 나하고는 안 맞다. 그것들은 하나의 가정일 뿐이다. 나는 당시 어떤 상황이 내게 일어나서 다 오픈시켜 놓고 몰입했던 것뿐이다.









윤: 그 책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무엇인가?









한: 나는 (내게 일어난 모든 일들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해피타오’를 만들기 전 나는 6개월 간 완전한 행복과 평화, 풍요의 세계를 보았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비전도 보았다. 그것들을 나눠 주고 싶었다.









윤: 그 역시 주관적인 비전은 아닌가?









한: 마치 심문을 받는 것 같군. 모든 비전은 주관적인 비전이다. 그렇지 않은가? 내 마음의 상태는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들다. 지구의 어떤 개념이나 언어로 설명할 도리가 없다.









윤: 하지만 그 역시 (체험하는 주관이 있는 여러 체험 중의) 한 체험이 아닌가?









한: 체험 자체가 있었다. 에너지의 흐름 자체. 이것은 설명이 불가능하다. 나는 완전한 행복에 도달하였다. 그리고 그 행복의 에너지는 한국 역사에 있어서도 순차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해피타오를 시작한 이후 광주로 내려갔다. 이 흐름을 이해시켜 주기 위해서다. 광주에선 많은 아픔이 느껴졌다. 그것을 어떻게든 풀어 주고 싶다.









윤: 서구의 마인드는 무심의 세계마저도 언어와 논리화하고 학술화하는데 익숙하다. 당신이 네거티브한 상태에서 ‘해피타오’의 긍정적인 세계로 옮겨갔다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볼 때는 그다지 새로운 것도 아니다. 말하자면 가장 정치적인 시대, 유신 독재 시절에 과연 누가 ‘긍정’에 대해서 주목할 수 있겠는가? 선생 역시 그 당시에는 세속적인 일에는 부정적이었고 영적인 수행 속에 자신을 가둬 놓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해피타오를 만든 것은 문민정부 이후의 일이다. 시대가 변하자 그전에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던 명상이나 수행의 세계에 대해서도 이 사회가 조금씩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류시화 씨의 경우처럼 전에는 토막기사 정도로 취급하던 사람들을 주류 언론들이 앞다투어 장문 취재에 열을 올리고… 그래서 명상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서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한결 쉬워진다.



명상을 하는 개인으로서 묻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수행인을 대했을 적에 기존 파라다임으로 당신의 과정을 해석하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마음의 세계를 떠난, 객관화가 불가능한 내적인 현상이라는 것도 절대적인 비언어의 세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조건이나 기타 등등과 연루된 특정 심리의 주관적 현상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는 뜻) 그런 식의 문제 제기가 있을 적에 명상인들은 대체로 취약한 경우가 많아서 이 사회의 주류로부터 진지한 이해나 온건한 관심을 받지 못하고 만다.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









한: 모든 명상은 심리학적이다. 나는 보수적인 논객들하고 부딪칠 일도 없다. 그들이 사용하는 논리들은 대체로 불교 이데올르그들이 하는 얘기들이다.



나는 소명의식을 느꼈는데 월드컵 사건에 개입해야 되겠다는 것이다. 내가 예언한 바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집단심리가 월드컵 이후로 변했지 않은가? 나는 자기 혼자만이 아니고 (행복의 에너지가) 세속적으로 퍼져 나가길 바랐다.









윤: 집단 심리가 영적인 이슈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한: (집단 심리니 영적인 이슈니) 모든 관점이나 파라다임은 다 장난이다. 내가 만든 장난이다. 한국인은 불행에 익숙해져 있었다. 월드컵을 통해 행복 체험을 집단적으로 공유하게 되었다. 일부 반대의견도 있지만 그 이후 이런저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많은 변화가 있었지 않은가? 한국인의 불행의식을 집단적으로 풀고, 함께 갖고 가면서 의식의 변화가 동반되었다. 그리고 모든 영적인 체험은 다른 상황, 예컨대 공산주의 국가에 가서 그걸 얘기하는 사람들은 바보가 된다. 당신은 인터뷰를 시비를 거는 것처럼 한다. 하지만 나의 과거는 흘러갔다. 그에 대한 가치평가는 이렇게 저렇게 매겨지겠지만 나로선 설명할 필요가 없다.(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춰 내면에서 일어나는 대로, 에너지가 흘러가는 대로 자신을 전체적으로 맡겼을 뿐이었다는 뜻 같음) 내가 변명해야 되나?









윤: 내 질문의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까 말한 대로 누군가는 지탄을 받거나 오해를 사더라도 얘기해야 되지 않나? 그래야 명상에 대해서 일반인들도 공감하고 이해하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지 않나?









한: 그 말은 맞다. 내가 그렇게 한 것은 나의 도박성향이기도 하다. 사실 누가 그런 일을 하겠나?









윤: 나는 고상한 명상 담론들의 말놀이 게임을 부수고 싶었다. 그런 뜻에서 아까 여관방 퍽킹 노이즈 사건 같은 것은 아주 신선하게 들렸다. 당신처럼 말하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한: (미소를 지음) (대개는 이해하기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는 운동권 사람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들도 나를 좋아한다. 나는 같이 가야 할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나는 야한 언어는 써도 남을 공격하는 언어는 사용할 수 없다.









이쯤 해서 목도 마르고, 술을 한 잔 하기로 했다. 한바다 선생은 바로 전날에도 술을 꽤 했다는데 흔쾌히 동의했다.









한: 몇 살이냐? 그런 질문은 아무도 안 했는데 해 줘서 고맙다. 내 마음을 아니까 한 잔 하자.



(건배, 쨍)









한바다 선생은 《3천년의 약속》에서 영적인 추구가 그 혼자만이 아니라 세속적으로도 퍼져나가길 바랐다면서 내적 체험의 언어화에 대한 문제를 화제로 삼았다.









한: 언어를 떠났을 때 언어를 다시 끄집어내는 일은 대단히 어려웠다. 책을 두 줄 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아무 것도 아닌 개념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언어에 적응하는 데 1년 이상 걸렸다. 《마하무드라의 노래》를 쓸 때는 처음엔 말도 안 되었다. 지금에 와서 손을 보고 짜맞춘 것이 그 정도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탐구를 해라. 자, 형이라고 불러도 좋다. 술 한 잔 하자.









(녹음기 한 동안 꺼짐)









동석한 제자에게



한: 너는 마음이 맑은 사람이다. 책을 통한 공부는 끝났다. 마음공부를 해서 체험을 했으면 좋겠어. 공을 체험해야 마음이 계속 맑아질 수 있다. 이론은 끝났으니 체험의 영역으로 가야 한다.









필자에게도 여러 가지 조언을 주었다. 갑자기









한: 그리고 뽀뽀 한 번 하자.



윤: 어? 제자 분이 질투하면 안 되는데?









눈이 휘둥그레지는 제자, 결국 뽀뽀를 하고 마는 필자. 명상지에 대해서 조언을 하였다.









한: 대중적이 되라. 너무 힘들게 살아.









필자가 뭐라뭐라 하니









한: 나한테 선생 자字는 빼고. 아까 한 번도 안 들어 본 질문이라 오리지널리티가 있었다. 질문 잘했다. 당신도 자기 언어로 100퍼센트로 떠들어라. 상대방 언어로 떠들면 안돼. 자기 색깔이 없으면 망해. 어중이 떠중이 다 모으면 색깔이 없고 백화점처럼 돼 버린다. 명상 잡화상이지 그건 아니야. 자기 소리를 분명히 말하고 그래야 살아. 어중이 떠중이 다 합치면 뭐하나? 자기 강렬한 목소리가 있어야지. 나는 당신을 도와주고 싶다. 명상의 시대가 올 것이다. 반드시 확고하게, 현실 탓 말고 분명하게 자리잡길 바란다.









다음은 술잔이 오고가면서 필자가 뭐라뭐라 계속 딴지를 걸고 성질을 있는 대로 부리는 판인데 한바다 선생이 한 얘기를 모아 보니 이렇다.









한: 본인은 본인이 인정 못하고 있어. 성질이 더러워.



안 참아 봤잖아? 참어. 성질 죽여. 명령이야.



(그거) 죽기보다 어려울 거야.



그래도 해야 돼. 그래야 완전하게 살 수 있다.



내가 당신에게 주는 메시지는, 이건 명상이야.



분명히 들어라. 끝까지 들어라. 듣기 싫어도 좋아.



내가 형 동생 하자고 하잖아?



성질 꺾고 성공해.



성질 부리는 게 자기 색깔은 아냐.



꺾어야 돼. 그래야 자기 색깔이 드러난다.



그냥 술 한 잔 마시는 것처럼 해라.



성공은 목적이 아니고 중간 과정이지만, 본인의 (마음공부) 과정이지만 당신은 명상지를 성공시켜라.



그래야 (쌓여 있는 게) 완전히 풀리고 그렇게 해서 본인이 완전히 살아나야 돼.



성질 드러워. 존나 드러워



자기 색깔 살리면서 성질은 드러워요.



그게 한계야. 세상과의 조화, 죽기보다 어려워. 하지만 세상과 조화되지 못하면 순수함도 왜곡된다.



모친 사후, 나는 크게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얻었다. 도와주면 된다는 거. 세상 인연은 끝났고 명상의 외연을 넓히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삶을 풍족하게 해 주고 싶다. 《3천년의 약속》이 그 기폭제다.



다음 얘기가 있을 것이다.









(녹음기가 꺼졌다가 켜졌다가 함)



중간중간 딴지 거는 걸 잊지 않는 필자에게









한: 당신은 본인이 원하는 게 분명히 있다. 성직은 괴팍해도 순수하고. 마음은 넓은데 안 넓은 척한다.



윤: 얼마나 넓은데요? 강만큼인가요, 바다만큼인가요?



한: 강만큼 넓다.



윤: 넓은 건 아니네요.









‘이 정도면 막 가자는 얘기죠?’라는 식의 질문과 딴죽이 이어졌다. 최근 인도에서 한국 여자와 섬씽이 있었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물어보았지만 한바다 선생은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이었고 필자 또한 정보 자체를 신뢰하기가 어려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마지막 질문을 던져 보기로 했다.









윤: 오쇼 같은 사람은 일체의 스승과 제자 관계도 부정했다. 당신은 스승인가?









한: 나는 이미 스승으로 되어 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필요성이 있어서 만든 것이다. 쌍방간에 도와주는 관계이다. 그 관계들 속에는 일부이긴 하지만 세력화하는 것도 있다. 그것은 그들의 문제이다.



나는 (제자들을 위해) 어떤 방법이라도 다 쓴다. 뭐가 잘못되었나?









그렇게 묻는 필자가 잘못된 것 같았다.



더 이상 기록이 없다.



나중에 녹음 내용을 들어보니 일반 사람 같았으면 몇 번이나 탁자가 뒤짚어질 것 같은 불손함이 많았다.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참 드라마틱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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